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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간 정책 논의는 말 그대로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국회와 중앙선관위를 무력화하려 한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워낙 경악스러웠고, 제주항공 참사라는 참담한 사건도 있었죠.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책 논의는 사장됐지만, 정책 환경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모든 부문에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죠. 그래도 정책 논의를 되살려 보기 위해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만일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없었다면 지난 한 달간 정책 공론장에서 네 가지 의제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첫째는 의료대란입니다. 지난해 2월에 이탈한 전공의들이 끝내 연말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전국의 응급의료체계는 겨우 유지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죠.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은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방향만 제시했을 뿐, 어떻게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확충할지, 의료비 증대를 어떻게 제어할지, 반대하는 의사와 전공의를 어떻게 대할지 등에 대해서는 총체적인 미숙함을 드러냈습니다. 비상계엄이 없었다면 의료대란이 다시금 연말 정국을 강타했을 겁니다.
둘째는 민생회복을 위한 내수진작 정책입니다. 이미 2024년 하반기가 되면서 소매판매액지수, 자영업자 연체율 등은 최악의 지표를 찍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경기 하강기에 고집스럽게 긴축 재정을 펴는 바람에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는데요. 12.3 비상계엄으로 내수 경기는 더욱 얼어붙었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88.4로 전달에 비해 무려 12.3p 감소했죠. 내란 상황이 종식되고 내수 대책이 속히 나왔으면 합니다.
셋째는 주주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말에 드라이브를 걸던 법안이었고, 국민의힘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맞불을 놨었죠. 과연 어떤 방안이 자본시장을 건전하게 하고, 밸류업을 할지, 볼만한 논쟁이 벌어질 뻔했었습니다.
넷째는 AI 교과서입니다. 아직 크게 주목받은 의제는 아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5년부터 AI교과서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었습니다. 학교 현장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AI 교과서에 우려를 표하고 있었고, 연말엔 찬반 양쪽이 크게 부딪칠 것이 예상되던 상황이었는데요. 탄핵 국면에 더불어민주당은 AI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을 통과시켰고, 오는 17일부터 국회에서 AI교과서 청문회를 연다는 계획입니다.
위 네 가지 정책적 사안은 계엄이 없었다면 논의가 되었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세 가지 정도가 더 논의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2025년 2월까지 한국이 국제 사회에 제출해야 하는 2035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량(NDC)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 감축량과 연계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계획 등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인데요. 안타깝게도 2월까지 관련 논의가 이뤄지긴 어려워 보입니다.
둘째는 지난해 법안이 통과된 지역돌봄통합지원법에 대한 후속 준비입니다. 의료, 요양 등 통합돌봄을 위한 법적 근거인 이 법은 2026년 3월에 시행되는데요. 지역의 전담 기관 설치, 역할 명확화, 전문 인력 양성 등의 숙제가 무척 많습니다. 올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만 의미 있는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째는 연금개혁입니다. 지난해 극적으로 여야가 합의할 뻔했는데, 정부가 걷어차버린... 연금개혁은 한 번에 모든 숙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자주 고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런 논의들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내란 국면이 빨리 끝나야 하지 않을까요. 정책이 논의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의제들을 계속 눈여겨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이 중요한 논의를 위한 시기가 왔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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