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엄의 위법성에 대해선 이미 많은 분들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긴급 담화문에 담긴 비상계엄의 사유 중에 ‘예산 탄핵’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예산 탄핵은 긴급 담화문에 담긴 비상계엄의 두 가지 사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1️⃣ 첫째 사유는 야당이 다수의 검사와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다는 것이었죠. 2️⃣ 두 번째가 야당이 정부의 예산안을 삭감했다는 것이고, 이를 ‘예산 탄핵’이라 표현했는데요.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대책 예비비 1조원·아이돌봄 지원수당 384억원·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등 4조 1000억원을 삭감했습니다. 심지어 군 초급 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 당직 근무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런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치 민주당이 꼭 필요한 예산을 대책 없이 깎았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사유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발령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대통령의 인식이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실에 정녕 야당의 감액 예산안 처리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설명해 줄 참모가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있는데도 말을 못 하는 것인지, 그저 놀랍고 답답할 뿐입니다. 물론 담화문에 담긴 사유가 명목에 불과할 뿐, 다른 잘못과 범죄를 감추려 비상계엄을 했을 가능성이 더 크겠죠. 아무튼 윤석열이 국민들께 공개적으로 밝힌 사유도 전혀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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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상해 보이긴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와 여당은 ‘감세’와 ‘긴축 재정’을 내세웠고, 야당은 ‘적극 재정’을 통한 ‘민생 회복’을, 또 ‘추경’을 주장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야당은 ‘증액 예산안’이 아닌 ‘감액 예산안’을 단독으로 예결위를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물론 쌈짓돈이나 다름없는 예비비, 검찰과 감사원의 특수활동비 등을 일부 깎은 것이지만, 증액안이 보이지 않아 의아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1️⃣ 일단 첫 번째 의문의 힌트는 헌법에 있습니다.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국회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달리 정부 도움 없이 증액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2️⃣ 두 번째 의문은 과연 이번 예산안 통과가 ‘날치기’인가인데요. 엄밀히 보면, ‘날기치’가 아닙니다. 정부의 예산안이 국회에서 확정되기까지 상임위-예결위-본회의의 과정을 거치는데요. 지난 29일에 예결위를 통과한 것이죠. 아직 본회의 통과 절차가 남아 있고, 여야가 충분히 협의할 만한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보통 ‘날치기 통과’라는 표현은 ‘본회의 통과’ 때에 쓰는 단어이니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세 번째 의문은 재작년과 작년엔 그때도 야당이 다수당이었는데도 ‘야당 단독 예산안 통과’가 없었는데, 올해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입니다. 작년과 재작년엔 다수당인 야당이 예산과 세법(예산부수법안) 심의에 있어 소수 여당에 끌려갔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입니다. 국회선진화법에는 예산 심의의 기한을 단축하고,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정부의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산안과 부수법안(세법)이 11월 30일까지 심사가 되지 않을 경우 12월 1일 정부의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토의에 부침)되는 제도죠. 예결위 논의의 결과도 반영되지 못한 원안이 본회의에 올라가고, 12월 내의 한정된 본회의 일정 내에 통과가 되지 못하면 정부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겪게 됩니다. 야당으로선 정부의 준예산 사태를 야기했단 비판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연말이 되면 제대로 협상도 못 해보고, 정부의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타협해 주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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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올해 민주당은 두 가지 전략을 짠 것으로 보입니다.
1️⃣ 첫 번째는 아예 국회선진화법에서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회선진화법을 다룬 여러 보고서에서도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2015년에 『현대정치연구』에 실린 보고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를 선진화시켰는가?’(정진영)에서 “국회의 재정통제권과 같은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번에 국세청 출신의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해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11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즉각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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