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절벽이 만나는 곳에서: 돌봄·청년·AI 전환의 동시 위기
지난 2주 사이 우리 사회의 핵심 구조를 향해 세 발의 경보탄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KDI는 2043년까지 요양보호사 99만 명이 부족해진다고 경고했고, 고용통계는 청년 취업자가 41개월 연속 감소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으며, 국회 안팎에서는 AI 인재를 키우겠다는 말만 무성한 채 AI로 밀려나는 사람을 보호할 체계는 여전히 공백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세 신호는 각각 다른 부처, 다른 연구기관에서 나왔지만, 하나의 구조적 실패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유’가 사라진 사회가 결국 돌봄도, 일자리도, 전환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노노케어’의 현실화: 돌봄 절벽과 사회 인프라의 위기
KDI의 진단은 냉혹합니다. 2043년 장기요양 수요는 지금의 2.4배로 늘어나는데, 현재 71만 명인 요양보호사는 2034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99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해집니다. 더 심각한 건 인력 구조입니다. 2043년엔 60세 이상 요양보호사 비중이 72.6%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가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 되는 미래입니다.
KDI는 외국인 인력 전용 비자와 돌봄 로봇 확대를 제언했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엽니다. 현재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전체의 0.9%, 대형 요양시설 돌봄 로봇 도입률은 6%에 그칩니다. Brookings는 이 상황을 더 넓은 맥락에서 진단합니다. 돌봄 노동은 만성적으로 저평가·저임금·불안정하게 다뤄져왔으며, 이것이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라 의도적 정책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돌봄이 가족의 책임으로 미뤄지는 동안 국가는 가격도, 인력도, 재원도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 돌봄은 이제 복지 정책의 세부 항목이 아닙니다. 저출생 대응, 고령화 대비, 여성 고용, 지역 유지를 가로지르는 사회 인프라입니다. 10년 후를 대비하는 인력 설계와 재원 마련의 사회적 합의가 지금 당장 시작돼야 합니다.
2. 반도체 호황의 역설: 41개월째 밀려나는 청년들
반도체 수출이 최고 호황을 구가하는 사이, 15~29세 청년 취업자는 41개월째 연속 감소했습니다. 3월 청년 고용률은 43.6%로 전년 동월 대비 0.9%포인트 하락, 전 연령대 중 유일한 하락입니다. 장치산업 특성상 반도체 투자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다,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와 AI 대체 효과가 복합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 고통의 민낯은 숫자로 나타납니다. 학자금대출 체납액이 역대 처음으로 800억 원을 돌파했고, 갚아야 할 청년 5명 중 1명이 상환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Brookings의 분석은 이 문제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AI에 높게 노출된 노동자 중 610만 명은 AI 노출도도 높고 적응 역량도 낮은 ‘이중 취약’ 집단으로, 저축·연령·지역 노동시장 밀도·스킬 이전 가능성이라는 네 변수에 의해 취약성이 결정된다는 분석입니다. 한국의 청년 취업자 41개월 연속 감소와 구조적으로 같은 패턴입니다.
💊 '반도체 착시’는 현장의 위기를 가립니다. 호황 지표 너머로 무너지는 청년 일자리와 학자금 체납의 구조를 직시하는 산업별 대응책, 그리고 전환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을 위한 ‘자동 안정장치’ 설계가 동시에 요청됩니다.
3. AI 인재를 키우되, AI로 밀려나는 사람은 방치한다
국회미래연구원과 국회예산정책처가 잇달아 AI 인재 양성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AI 일자리 전환, 양극화 대책 마련해야"라는 세미나 제목이 보여주듯, 토론의 방점은 키우는 쪽에만 찍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AI로 밀려나는 노동자를 위한 전환 지원 체계는 여전히 공백입니다.
RAND의 분석은 이 공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AI 효과의 예측 불가능성은 연쇄적 실패와 시스템 리스크, 잠재적 대규모 노동력 충격을 낳을 수 있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 경기 하강 시 자동으로 작동하는 ‘자동 안정장치(automatic stabilizers)’ 설계가 핵심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연구들이 '노동 전환 지원 체계 법제화’를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처방입니다. AI 인재를 키우는 것과 AI로 밀려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동시에 설계해야 할 정책입니다. 전자만 강조하고 후자를 방치하는 것은 새로운 불평등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4. 기획예산처 100일: '분절화 극복’이라는 숙제
기획예산처가 출범 100일을 맞았습니다. ‘2045 미래 비전’ 발표, 재원 조달 방안을 포함한 중장기 전략 수립, 지출 구조조정이 예고돼 있습니다. 긍정적인 신호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과제가 추가돼야 합니다.
현안 대응과 미래 준비를 분리해 기획예산처를 세운 이유는, 당장 급한 일에 치이지 않고 앞날을 설계하는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기획이 실행력을 갖추려면 정부 내 분절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각 부처가 자기 업무에만 몰두하며 소통하지 않으면, 개별 성과는 있어도 전체 성과는 미흡한 패턴이 반복됩니다. 성과관리는 지출 절감보다 성과 자체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고, 그 핵심 조건이 바로 분절화 극복입니다. 미래 비전이 '비전 2030’의 재현이 되지 않으려면, 전략의 언어가 행정의 실천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5. [글로벌] 이란전쟁이 한국에 가장 아프다
CSIS의 분석 제목은 단호합니다. “중동전쟁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다.” 원유 수입의 7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KOSPI는 43년 역사상 최악의 단일 세션 폭락을 기록했고, 원화는 17년 만의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정부의 전략 비축유는 실제 소비 기준 26일치에 불과하며, OECD는 한국 성장률 전망을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으로 하향했습니다.
IMF는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중동전쟁 장기화와 에너지 가격 부담으로 세계 성장률 전망을 3.1%로 낮췄습니다. '전쟁이 6~7월까지 지속되면 올해 2% 성장은 사실상 어렵다’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3월에만 5.1포인트 급락해 비상계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반도체 수출 호조라는 창문 너머로, 에너지 리스크가 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 [결론] 두 절벽 사이에서 '여유’를 설계한다는 것
KDI가 진단한 두 절벽 — 노인을 돌볼 100만 명이 사라지고, 청년 취업자가 41개월째 밀려나는 현실 — 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돌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전환 지원 없이 AI 혁신을 추구하며, 지역의 구조를 방치한 채 출산율을 탓하는 패턴이 만들어낸 하나의 구조입니다. RAND가 '자동 안정장치’를 설계하라고 하고, Brookings가 '돌봄을 정치 어젠다’로 다뤄야 한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관리하는 정책이 아니라, 두 절벽 사이에 여유의 공간을 만드는 사회 설계입니다. 국가가 돌봄 인프라를 책임지고, 전환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를 제도화하며, 청년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지역 조건을 재설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탈희소성 사회’를 향한 첫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 이번 호 주요 키워드
돌봄 절벽 · 청년 고용 위기 · AI 전환 사각지대 · 기획예산처 100일 · 호르무즈 리스크 · 자동 안정장치